가족을 조회해드리겠습니다
유럽 규정은 「가족 구성」을 국가 등록부에서 조회하는 속성으로 적어놓았다. 그 값에 무엇을 적을지 정하는 규칙서는 아직 없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본 적이 있다면 그 감각을 안다.
주민센터든 인터넷이든, 몇 분이면 종이 한 장이 나온다. 거기에 내가 누구의 자녀이고 누구의 부모인지가 적혀 있다. 내가 쓴 것이 아니다. 국가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출력한 것이다.
한국은 그 종이의 형태를 한 번 크게 바꿨다.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가 호주제 관련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08년 1월 1일부터 호적 대신 가족관계등록부가 쓰였다. 집을 단위로 묶던 등록을 사람을 단위로 다시 짠 것이다.
유럽은 지금 그 종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다. 서랍이 아니라 휴대폰 안으로.
부속서 VI의 다섯 번째
유럽 디지털 신분 규정에는 부속서가 여러 개 붙어 있다. 그중 여섯 번째가 「최소 속성 목록」이다. 회원국이 반드시 다룰 수 있게 해야 하는 속성들의 목록이고, 열한 줄이다.
“1. 주소; 2. 나이; 3. 성별; 4. 혼인 상태; 5. 가족 구성; 6. 국적 또는 시민권; 7. 교육 자격·직함·면허; 8. 직업 자격·직함·면허; 9. 자연인 또는 법인을 대리할 권한과 위임; 10. 공적 허가와 면허; 11. 법인의 경우 재무·회사 정보.”
다섯 번째가 「가족 구성」이다. 아홉 번째는 「대리할 권한과 위임」이다.
이것이 목록에 있다는 말의 뜻은 제45e조에 적혀 있다.
“회원국은 … 이행규정 발효로부터 24개월 내에, 적어도 부속서 VI에 열거된 속성에 대하여, 그 속성이 공공 부문의 진본 원천에 의존하는 경우, 적격 신뢰서비스제공자가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전자적 수단으로 그 속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번역하면 이렇다. 가족 구성을 등록부에 물어봐서 기계가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라.
2편에서 서른 장씩 발급되던 그 연령 증명이 이 목록의 두 번째였다. 같은 문서, 같은 조문이다.
그리고 이 24개월은 낯선 시계가 아니다. 규정 전체에서 「24개월 내」라는 조항은 둘뿐인데, 둘이 같은 것을 기산점으로 삼는다.
제5a조는 *“각 회원국은 본조 23항 및 제5c조(6)의 이행규정 발효일로부터 24개월 내에 최소 하나의 유럽 디지털 신분 지갑을 제공해야 한다”*고 적고, 방금 본 제45e조는 *“제5a조(23) 및 제5c조(6)의 이행규정 발효일로부터 24개월 내에”*라고 적는다. 같은 두 조항이다.
지갑을 내놓을 의무와 가족 구성을 조회 가능하게 만들 의무는 같은 날 만료된다. 1편에서 세던 그 마감이다.
그래서 그게 무엇인가
지갑 쪽 설계 문서를 열면 그 물건의 모양이 나온다.
부모가 자녀 대신 학교 시스템에 접속하거나 병원 기록을 보거나 복지 신청을 할 때 쓰는 증명서다. 유럽 디지털 신분 지갑의 참조 문서는 이것을 별도 유형의 자격증명으로 규정한다 — “대리를 위해 발급된 대리 자격증명은 고유한 자격증명 유형을 가진다.”
별도 유형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 증명서와 섞이지 않고, 검증하는 쪽이 이건 대리인이 내민 것이라고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갈 관계 정보를 어디서 가져오는지도 적혀 있다.
“특정 사용 사례(예: 부모-자녀 관계)의 경우, 이 자격증명의 발급자는 국가 수준의 진본 원천에서 관련 정보를 가져올 수 있게 된다.”
진본 원천이 무엇인지도 정의돼 있다 — 공공기관이나 민간 주체의 책임 아래 있는 저장소로, 그 정보의 1차 원천으로 간주되거나 법과 행정 관행상 진본으로 인정되는 것.
가족관계등록부가 정확히 그것이다.
그 증명서는 숨길 수 없다
2편에서 본 설계의 요점은 필요한 것만 내미는 것이었다. 열여덟을 넘었다는 사실만 나가고 생년월일은 남는다. 연결의 단서가 될까 봐 발급 시각까지 뭉갠다.
대리 자격증명은 방향이 반대다.
“검증자는 자신이 법정대리인 또는 대리인과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알게 된다. 이는 해당 지갑 단위가 대리 자격증명 전용의 고유한 유형을 가진 자격증명을 제시한다는 사실로 보장된다.”
같은 문장이 논의 단계에서는 더 셌다 — “이 정보를 숨기는 것이 가능해서는 안 된다(SHALL NOT be possible to conceal).”
이것을 결함이라고 쓰지 않겠다.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면 그건 사기다. 타당한 요구다.
다만 사실 하나는 남는다. 같은 지갑 안에 반대 방향의 요구 두 개가 들어간다. 나이는 최대한 감추도록 설계되고, 관계는 감출 수 없도록 설계된다.
관계는 되돌아간다
두 번째 차이가 있다.
2편의 연령 증명에 대해 명세는 폐기가 필요 없다고 적었다. 폐기 장치를 넣으면 발급자와 검증자 양쪽의 복잡도가 크게 올라가는데, 연령 확인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열여덟을 넘은 사람이 다시 열일곱이 되지는 않는다.
대리 자격증명은 다르다. ARF는 이것이 단기간이거나 폐기 가능해야 한다고 적는다. 폐기 가능한 경우에는, 법이 정한 자격을 가진 주체가 발급자에게 폐기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는 되돌아가지 않지만, 관계는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계는 되돌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갈라지기도 한다. 일본은 2024년 5월 개정 가족법으로 이혼 후 공동친권을 도입했고, 새 규칙은 2026년 중반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이 아이를 대리하는가”*의 답이 둘이 된다. 그리고 둘이 어긋날 수 있다.
일본은 유럽 지갑 밖의 이야기다. 유럽 제도의 근거로 쓸 수 없다. 다만 관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예로는 정확하다 — 관계는 상태가 아니라 사건의 연속이다.
그런데 무엇을 적을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자격증명 안에 정확히 어떤 항목을 어떤 형식으로 적을지는 「규칙서(Rulebook)」라는 문서가 정한다. 어떤 속성이 들어가고, 유효 기간을 어떻게 표시하고, 대리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규정하는 문서다.
대리 자격증명의 규칙서에 대해 두 문서가 서로 다르게 적고 있다.
2025년 5월, 논의 문서의 요구사항 1번
“위원회는 한 자연인을 대리하는 자연인에게 발급되는 자격증명에 대한 규칙서를 만들어야 한다(SHALL create).”
2026년 7월 23일, ARF 부속서 2의 요구사항 RP_01
“자격증명 스킴 제공자는 대리 자격증명에 대한 하나 이상의 규칙서를 만들 수 있다(MAY create).”
만들어야 하는 쪽이 위원회에서 스킴 제공자로 바뀌었고, 만들어야 한다가 만들 수 있다로 바뀌었다.
경위는 이 문서들로 알 수 없다. 그래서 두 문장을 나란히 놓는 데까지만 적는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상태다. 유럽 디지털 신분 규칙서 카탈로그에는 지금 개인식별데이터 규칙서 하나와 서식 템플릿이 있다. 대리 자격증명 규칙서는 없다.
오해를 막기 위해 하나 덧붙인다. 속성을 검증하는 절차 자체의 규격은 이미 나와 있다. 위원회 이행규정 (EU) 2025/1569가 그것이고, 2026년 7월 15일 (EU) 2026/1735로 개정됐다. 없는 것은 검증 절차가 아니다. 대리 자격증명 안에 무엇을 적을지 정하는 문서 하나가 없다.
등록부는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이 설계는 관계를 새로 만들지 않는다. 이미 있는 것을 옮긴다.
규정이 지목한 진본 원천은 대개 오래된 물건이다. 그리고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 아는 나라들이 있다.
한국은 그것을 한 번 뜯어고쳤다. 2005년 헌법불합치 결정과 2008년 가족관계등록부 시행으로, 호주를 중심으로 집을 묶던 등록이 사람 단위 등록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호구는 출생 시 부모로부터 상속된다. 지금 사는 곳이 아니라 관계가 정한다. 그런데 2026년 5월 22일 국무원이 직장 사회보험 가입에서 호구 제한을 없앴다. 일하는 도시에서 가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정책 문서가 쓴 표현은 「인호분리」 — 사람과 호적을 분리한다였다.
두 사례가 방향이 같다. 관계 등록이 정하던 것을 줄이거나, 관계에서 다른 것을 떼어냈다.
여기서 두 나라 이야기로 세계를 말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유럽이 저 나라들처럼 된다고 쓸 생각도 없다. 선례로만 쓴다. 쓰는 이유는 하나다 — 규정이 국가 등록부를 원천으로 지목했고, 그 등록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물건인지 이미 아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위치
여기서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관계를 사회의 기본 단위로 삼자는 글을 이미 공개해두었다. 2026년 5월에 쓴 개인적인 글이고, 거기 실행 제안 항목에 이런 문장이 있다.
정책 입안자에게 — 1인 가구 대상 정책이 아니라 관계 단위 정책의 작은 시범. 두 명 이상이 함께 등록할 때 세제와 주거 혜택이 가는 구조의 파일럿.
그러니 이 글은 중립적인 관찰이 아니다. 유럽이 짓고 있는 것은 필자가 제안했던 것과 형태가 겹친다.
그런데 같은 글에 이런 문장도 있다. 가족이 진짜 가족인 이유는 혈연이 아니라, 수십 년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슬픔을 통과했기 때문이라고. 가족은 혈연의 이름이 아니라 누적의 이름이었다고.
부속서 VI의 다섯 번째 항목은 그것을 조회되는 속성으로 다룬다.
같은 단어를 두 방향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쪽에서 가족은 시간이 만들고, 다른 쪽에서 가족 구성은 등록이 만든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기서 정하지 않겠다. 다만 지갑이 조회하게 될 것은 뒤엣것이다.
예상되는 반론
“부모가 아이 병원 예약을 대신하는 게 왜 문제인가.” 문제라고 하지 않았다. 필요한 기능이고, 지금도 종이로 하고 있는 일이다. 논점은 필요 여부가 아니라 그 관계가 어디서 오고 무엇으로 적히는가다.
“대리인이라는 걸 숨기면 사기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이 글은 그 요구를 결함으로 다루지 않는다. 남는 것은 방향의 차이뿐이다 — 한 지갑 안에서 나이는 감추도록, 관계는 드러나도록 설계된다.
“규칙서는 곧 나올 것이다.” 그럴 것이다. 다만 지금 조문은 만들 수 있다이지 만들어야 한다가 아니다. 나올 의무가 있는 문서가 아니라는 상태 자체를 적어둔다.
“호적이나 호구 이야기는 유럽과 상관없다.” 가장 강한 반론이다. 답은 앞에 적었다 — 선례로만 쓰고, 유럽이 그리로 간다고 쓰지 않는다. 규정이 국가 등록부를 원천으로 지목했다는 사실이 그 이야기를 꺼낼 근거의 전부다.
“관계 등록을 제안했던 사람이 왜 트집인가.” 정당한 질문이다. 답은 이렇다 — 형태가 비슷하고 안전장치가 다르다. 필자가 적었던 안전장치 중에는 가족과 자녀가 연좌로 고통받지 않도록 공개적 수치를 만들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었다. ARF의 요구는 검증자가 대리 관계를 알게 한다이다. 같은 문제에 반대 방향의 답이다.
서식이 비어 있다
부모가 아이 대신 예약을 잡는 일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증명서로 만드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그 증명서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다.
누가 가족인가. 언제부터 가족이 아닌가. 이혼한 두 사람이 각각 대리 자격증명을 들고 있을 때 어느 쪽이 우선하는가. 등록부에 관계가 적혀 있지 않은 사람은 그 지갑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물음들에 답하는 문서가 규칙서다. 그리고 그 문서는 만들어야 하는 것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되었고, 아직 없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본 사람은 그 종이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안다. 그것이 어떤 논쟁 끝에 지금의 서식이 되었는지도,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2005년과 2008년 사이에 무엇이 오갔는지 말이다.
유럽에서는 그 서식이 아직 비어 있다. 그리고 채울 의무를 진 쪽이 조문상 정해져 있지 않다.
판단은 남겨둔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항목
이 글은 아래 항목이 확인되기 전까지 검증 완료로 표시되지 않는다.
- 어느 회원국이 「가족 구성」을 실제로 원천 검증 대상으로 붙였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규정이 의무를 정한 것과 실제로 굴러가는 것은 다른 말이다.
-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의 사건번호를 1차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날짜와 결정 취지는 2차 출처에 따랐다.
- 중국 국무원 2026년 5월 22일 문건의 원문과 「인호분리」라는 표현을 1차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 일본 개정 가족법의 시행일을 1차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다.
- 논의 문서의 SHALL이 최종본에서 MAY가 된 경위를 알 수 없었다. 본문은 두 문장을 나란히 놓는 데까지만 갔다.
출처
- 규정 (EU) 2024/1183 — 부속서 VI, 제45e조 (EUR-Lex 원문)
- EUDI 지갑 ARF 본문 §2.6.5 — 한 자연인이 다른 자연인을 대리한다
- ARF 부속서 2 — Topic 29 대리 패러다임 (RP_01·RP_02)
- ARF 논의 문서 Topic I — 대리 (0.4판, 2025-05)
- ARF 부속서 1 — 용어 정의 (Authentic Source)
- EUDI 자격증명 규칙서 카탈로그
- EU 연령확인 기술 명세 v1.0.9 (2편에서 다룬 문서)
- 필자의 예전 글 — LifeBite: 피라미드 이후의 노트
- 호주제 폐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중국, 이주노동자 사회보험에서 호구 장벽 제거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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