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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하지 않고 재배치한다

같은 날 같은 시간이 아닐지라도

AI가 두렵다는 사람들에 대해 AI에게 물었다. 어른과 아이의 비유가 뒤집혔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보였고, 셈을 하나 해 봤다. 이것은 그 걸음의 기록이다.

2026년 9월 11일

출발한 자리

AI가 두렵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남의 이야기였다.

2023년에 한 줄짜리 성명이 나왔다. AI로 인한 멸종의 위험을 줄이는 일이, 팬데믹이나 핵전쟁 같은 다른 사회 규모의 위험과 나란히 세계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이다. 서명한 사람 가운데 같은 해 구글을 떠난 연구자가 있었다. 그는 이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것. 내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물었다. AI에게, AI가 두렵다는 사람들에 대해.

어른과 아이

설명을 듣다가 비유가 하나 떠올랐다. 지능의 차이란 어른과 아이 같은 것인가. 그러면 어른은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봐야 하는가.

돌아온 대답은 방향이 거꾸로라는 것이었다. 어른은 아이를 꽤 잘 안다. 왜 우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달래면 되는지. 모르는 쪽은 아이다. 아이는 어른이 왜 계약서를 읽는지 모른다.

그 비유 안에서 나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 쪽이었다.

아이가 안전한 이유

그다음 말이 더 오래 남았다.

어른이 아이보다 훨씬 똑똑하고 힘이 센데도 아이가 안전한 것은, 어른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아끼기 때문이라는 것. 똑똑한 어른 가운데에도 아이를 해치는 사람이 있다. 똑똑함은 아끼는 마음을 보장하지 않는다.

거기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였다.

기계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가 아니었다. 우리를 다 이해하면서도 아끼지 않을까 봐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음이 기계에게만 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똑똑함이 아끼는 마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을 아끼고 있는가.

나는 세상을 20과 80으로 보고 있었다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이익의 넷을 가져가고, 나머지 넷이 남은 하나를 나누는 세상. 나는 지금의 사회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그 틀로 셈을 하나 해 봤다. 내가 해 본 셈이고, 1%라는 비율도 내가 정한 것이다.

이 셈 밑에는 내 생각이 하나 있다. 적어도 그 20은 먹고살 걱정을 덜 하고, 내면을 쌓는 일을 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기회를 더 얻는다는 것이다.

세계 인구 80억 가운데 여유가 있는 다섯 중 하나는 16억 명이다. 그 안에서 백 명 중 한 명이 자기 안의 무언가를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이 된다면 1,600만 명이다.

바닥이 깔려서 나머지 64억 명에게도 같은 비율이 닿는다면 6,400만 명이 더해진다. 합쳐서 8,000만 명. 다섯 배다.

사람의 자질은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세는 바닥의 크기다.

찾아보니 더 기울어 있었다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세상은 내가 보던 것보다 더 기울어 있었다.

세계불평등연구소의 2026년 보고서는 2025년 값을 이렇게 적는다.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세계 자산의 네 몫 중 셋을 갖고, 아래 절반의 사람들은 백 몫 중 둘을 나눈다. 소득으로 보면 위의 열 중 하나가 절반을 조금 넘게 가져가고, 아래 절반은 백 중 여덟을 가져간다.

다섯 중 하나가 아니라 열 중 하나였다.

잃어버린 아인슈타인

그렇다면 재능은 어디에 있는가.

미국에서 특허 기록과 세금 기록을 이어 발명가 120만 명을 따라간 연구가 있다. 소득 상위 1% 가정의 아이는 중위소득 아래 가정의 아이보다 발명가가 될 확률이 열 배 높았다.

그런데 그 격차는 어린 시절 수학 점수가 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조심스럽게 적는다 — 능력이 아니라 환경의 차이일 수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을 「잃어버린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혁신을 접했다면 무언가를 만들어 냈을 사람들이다. 논문의 제목은 「혁신에 대한 노출의 중요성」이다.

1913년 1월 16일, 인도 마드라스 항만청의 회계 사무원이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하디에게 편지를 보냈다. 증명이 거의 없는 수학적 결과가 백이십 개 넘게 적혀 있었다. 하디는 그것을 읽었다. 그 사무원의 이름이 라마누잔이다.

편지가 닿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안다. 닿지 못한 편지는 셀 방법이 없다.

빛은 번져 왔다

1820년, 15세 이상 가운데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2022년에는 열 명 중 아홉 명 가까이가 읽는다.

누가 한 번에 세계에 글을 가르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한 마을의 학교가 옆 마을로, 한 나라의 제도가 이웃 나라로 번졌으리라고 생각한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1981년에, 혈육과 가까운 무리를 지키려던 마음이 스스로 고른 윤리가 되면서 아끼는 원이 넓어져 왔다고 썼다. 「확장하는 원」이다.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그리고 멀리 있는 아프리카까지. 나는 그렇게 번지는 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방향이 아니다

그런데 빛은 한 방향으로만 오지 않는다.

2007년 3월, 케냐의 통신사 사파리콤이 휴대전화로 돈을 보내는 엠페사를 전국에 열었다. 공식 금융을 거의 겪어 보지 않은 시장이었다. 첫 광고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집으로 돈을 보내라」고 했다. 첫해 목표는 100만 명이었고, 엠페사는 그 목표를 넘어섰다.

나는 이것을 은행이 먼저 닿지 않은 자리에서 켜진 빛으로 읽는다. 그리고 그 돈은 도시에서 집으로 흘렀다. 빛은 한곳에서 퍼져 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켜져서 서로를 비춘다.

같은 날 같은 시간이 아닐지라도

그 빛이 멀리까지 닿겠냐고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적어 두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이 아닐지라도, 그 빛은 언젠가 닿겠지.

그 문장으로 내가 말하려던 것은 빛이 늦게 닿는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 길은 이미 누군가가 갔다. 글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글이 닿은 길, 아끼는 원이 넓어진 길, 먼 곳의 편지가 케임브리지에 닿은 길. 우리는 그 길을 또 다른 시간에 다시 간다.

같은 길이라도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빛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이번에는 기계가 있다. 그리고 세상은 열 명 중 한 명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래서 언젠가 있었을 것 같은 길이라고 그대로 믿고 걷지 않는다. 시간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기에, 그 길을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내 삶을 두고는 두려움이 없다. 다만 부모가 되고 나서 걱정이 하나 생겼다. 내 선택이 아이들의 무언가를 누르거나 막지는 않을까.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는 대부분 다음 세대가 짊어지니까.

그런데 나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다. 내가 고른 것이 아니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음 세대도 그들이 고른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남긴 자리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여기까지가 내가 서 있는 자리다.

나는 빛이 저절로 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계속 건네기 때문에 퍼진다. 앞의 연구가 찾은 것도 그와 같은 모양이었다 — 가까이서 접한 아이가 발명을 했다.

그러니 시작하는 자리는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그들은 그 위에서 그들만의 길을 만들면 된다.

되돌아본 자리

  • 초안은 3절에서 두려움을 내 것처럼 적었다. 나는 내 삶을 두고는 두렵지 않다. 두려워하는 쪽은 그들이었다
  • 처음에는 「20%가 80%를 가져간다」를 세상의 사실로 쓰려 했다. 찾아보니 보고서에는 상위 20%의 값이 없었고, 있는 값은 더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로 썼다
  • 초안은 제목의 문장을 빛이 먼 곳에 늦게 닿는다는 뜻으로만 옮겼다. 내가 말하려던 것은 같은 길을 다른 때에 다시 간다는 것이었다
  • 대화에서 들은 성명의 문장은 멸종 위험을 팬데믹·핵전쟁과 「같은 수준」으로 두라는 것으로 옮겨져 있었다. 원문은 「나란히」다
  • 대화에서는 발명가 연구를 「라지 체티 연구팀」의 것으로 들었다. 저자는 다섯이다
  • 요약 하나가, 불평등 보고서가 이 쏠림을 「정치적 선택의 결과」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원문 페이지에 그 말이 없다
  • 엠페사가 1년이 안 되어 200만 명을 모았다고 들었다. 연 문서는 첫해 목표가 100만 명이었고 그것을 넘었다는 데까지만 적는다
  • 대화에서는 모든 계층이 같은 비율로 발명하면 혁신이 몇 배로 늘 것이라는 추정도 들었다. 논문 초록에 그 추정이 없다. 쓰지 않았다

이 길에서 확인한 것 · 확인하지 못한 것

확인한 것

  • AI안전센터가 2023년에 낸 한 줄 성명의 원문 — 멸종 위험을 팬데믹·핵전쟁 같은 다른 사회 규모의 위험과 나란히 세계의 우선순위로
  • 제프리 힌턴은 2023년에 구글을 떠났고, 2024년 존 홉필드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위 성명에 서명했다
  • 세계불평등보고서 2026 — 2025년 상위 10%가 세계 자산의 4분의 3, 상위 1%가 37%, 아래 절반이 2%. 소득은 상위 10%가 53%, 아래 절반이 8%
  • 발명가 연구(2019) — 발명가 120만 명. 상위 1% 가정의 아이가 중위 이하 가정의 아이보다 열 배. 어린 시절 수학 점수가 비슷해도 격차가 이어진다
  • 라마누잔의 편지 — 1913년 1월 16일. 스스로를 마드라스 항만청 회계부의 사무원이라고 소개했고, 결과가 120개 넘게 적혀 있었다
  • 15세 이상 문해율 — 1820년 열 명 중 한 명, 2022년 87%
  • 피터 싱어 『The Expanding Circle』 — 1981년
  • 엠페사 — 2007년 3월 사파리콤이 전국에 열었다. 공식 금융을 거의 겪어 보지 않은 시장이었다. 첫 광고는 도시 사람들에게 「집으로 돈을 보내라」고 했다. 첫해 목표 100만 명을 넘어섰다
  • 내 셈 — 16억의 1%는 1,600만, 64억의 1%는 6,400만, 합 8,000만

확인하지 못한 것

  • AI 위험을 두고 갈라진 다른 진영의 입장. 원문을 보지 않아 이름을 쓰지 않았다
  • 바닥이 깔리면 80% 쪽에서도 같은 비율로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 내 셈의 가정이다

이 글이 말하지 않는 것

  • AI가 위험하다는 것, 또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
  • 기본 보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
  • 빛이 반드시 닿는다는 것
  • 내 셈이 세상의 사실이라는 것

아직 검증되지 않은 항목

이 글은 아래 항목이 확인되기 전까지 검증 완료로 표시되지 않는다.

  • AI 위험을 두고 갈라진 다른 진영들 — 지금 일어나는 피해를 먼저 걱정하는 쪽, 위험이 부풀려졌다고 보는 쪽, 규제가 혁신을 막는다는 쪽 — 의 입장은 대화에서 들었다. 각자의 원문을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이름을 쓰지 않았다.
  • 20과 80은 내가 세상을 보던 틀이다. 세계불평등보고서에는 상위 20%의 값이 없다. 상위 10%와 아래 절반의 값만 확인했다.
  • 바닥이 깔리면 80% 쪽에서도 같은 비율로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내 셈의 가정이다. 발명가 연구는 발명이라는 한 영역에서 그쪽을 가리키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같은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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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선정·전제 확정·판단은 사람이 했고, 출처 수집과 초안 작성은 AI가 했다. 이 글은 번역본이 아니다. 세 언어판은 같은 원천 문서에서 각각 작성된다.